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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클랜드 & 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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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1. 텐도우 아리스는 루이나 최초의 여성 변호사 중 한 명으로, 실제로도 벨포르 법조계에서 후배 여성 법률가들의 멘토 역할을 오래 맡았다. 그녀의 집무실에는 일본어가 병기된 헌법책과 손때 묻은 커피잔이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 2. 창립자인 커클랜드와 아리스는 단 한 번도 서로의 이름 순서를 바꾼 적이 없다. 초창기 언론에서 "아리스 & 커클랜드"라 표기하자 커클랜드 본인이 직접 정정 요청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3. 군사독재 시절, 커클랜드 & 아리스는 루이나 국방부를 상대로 '실종자 명단 공개 가처분 신청'을 낸 유일한 로펌이었다. 이로 인해 1955년부터 2년간 수임 정지가 내려졌지만, 로펌은 직원 해고 없이 버텼다. 4. 1977년 파트너로 승진한 안젤리카 시모네는, 텐도우 아리스가 생전에 직접 지목한 '다음 세대의 상징'이었다. 시모네는 이후 루이나 여성법률가협회를 창설했다. 5. 루이나 대통령이 된 루스탈지아 그래이도 젊은 시절, 커클랜드 & 아리스의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단 2주였지만, 당시 보고서를 사본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6. 커클랜드 & 아리스는 '의뢰인을 골라 받는 로펌'으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소규모 자문사나 방산계열 기업은 수차례 수임을 요청했지만 "윤리 기준 미달"로 거절당했다는 증언이 있다. 7. 로펌 내에서는 아직도 창립자들이 쓰던 사무실을 '선임자 방'이라 부르며 누구도 쓰지 않는다. 매년 개업기념일에는 해당 방에 향을 피우고, 아리스가 즐겨 마시던 녹차를 놓는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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